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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 Nature-Art

"자연미술을 하기 위해 자연 안으로 들어가면 평상시 숲 속을 거닐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자연을 보게 된다. 나를 끌어당기는 자연을 느끼는 순간 마치 감상의 대상이던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나무, , 바위. 숲 속의 그림자를 직접 대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자연을 만난다. 이곳이 바로 언제나 존재하지만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자연미술지대’이다."

자연미술은 서구 미술의 방법론적 진화 과정에서 벗어나 모든 미술의 근원인 자연에 그 뿌리를 내린다."

"자연미술은 자연현장에 존재하는 자연과 내가 함께 하는 관계 맺음의 상태이다. 자연미술은 직접 자연미술을 행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체험의 미술이다. 자연미술이 사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사진이라는 매체에 담겨진 미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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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 Nature Art

「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을 위하여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1980년대 초반 한국 야투그룹의 젊은 작가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미술을 시작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연과 미술이 함께 존재하면서 서로 그 경계를 만들지 않는 예술을 실험했다.

자연미술이 발생하게 배경에는 1960-70년대 서구로부터 한국에 유입된 개념미술이나 대지미술 등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야투는 단지 서구 현대미술의 이론을 따르지 않고 자연과의 단도직입적인 만남을 시도함으로서 야투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당시 야투작가들은 자연 속에 자신의 생각을 밀어 넣기 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풀을 뽑아 나무에 올려놓고, 마른나무가지에 손가락을 대어보기도 학고, 때로는 잔잔한 물에 돌을 던져 파문 속에 흩어지는 자신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자연과 교감하였다. 야투현장에서 작가들은 최소한의 행위로 자연과 만났으며 나의 표현의지가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보고자 하였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자연미술운동이 40여년을 지속해 오면서 드러내고 있는 미학적 상황 즉 유형화, 탈개성화, 퇴행적 조짐을 극복하고 야투의 정신을 되살려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다.

II 자연미술의 위치

1980년대 초반 야투는 자연과 직접 교감하면서 작업하였다. 이는 미리 준비한 아이디어나 재료들이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의 예술적 경험이나 미적 신념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자신의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이로서 야투는 '인간의 미술'에서 '자연의 미술'로 그 중심을 이동시켰다. 이는 자연과의 소통 지점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적 의지의 결과이며 인간과 자연 관계 방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1. 유형화

야투가 40여 년간 활동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 미술이 일체화된 무한생성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미술이 방법론적 변화를 추구함으로서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면 자연미술은 자연이라는 생명의 원천을 작업에 담아냄으로서 형식의 변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추진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투의 개별 작업 모두가 자연과의 생생한 만남을 통해 그 생명력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야투의 방법론이 정착된 1980년대 이후 기존 야투 작업을 훌쩍 뛰어넘는 작업이 많지 않다. 야투 역시 형식화의 과정 속에서 퇴행적인 현상을 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미술을 탐색하던 시기에 보여주었던 참신한 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과의 만남 자체가 의례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2. 탈개성화

나를 내려놓고 자연을 따른다는 야투의 방법론적 태도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연의 다양한 면모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라는 독립된 존재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자연이라는 보편적 세계에 주목하는 자연미술은 때로 자연 속에서 같이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과 유사한 감흥을 공유하게 된다.

몰아沒我 상태에서의 작업은 유일무이한 개인의 자연성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다. 물론 1980년대 야투의 자연미술은 자연과의 동행이라는 균형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서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개성을 조금이라도 더 강조하는 순간 다른 미술과의 근본적인 차별성인 자연의 미술로서의 강점은 약화되다.

III 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

자연미술 작업을 오랜 기간 수행 하고 있는 나 스스로 자연미술의 몰개성화 현상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미술 작업이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는 미술과 분리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때문이다. 현장 작업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기록하는 순간 그 작업은 인간의 미술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작가만의 고유한 세계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피하는 방법은 사진이나 영상 등의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음으로서 기존의 미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한다. 순수 자연과 만나는 자연미술을 통해 나를 무화시키는 한편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미술작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자연으로 나아가는 창의적 순환의 흐름을 만들어야한다. 상호 작용하는 자연계와 인간계 이 두 세계를 관통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넓혀 나가야한다.

1. 몰입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발전을 위한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 속으로 더욱 깊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동안 아무리 많은 자연 속에서의 자연미술 작업이 있었더라도 자연은 날마다 새롭고, 사회 환경 역시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역시 성장, 경험, 학습 등을 통해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울 수 있다.

내가 무엇인가 해보려는 의지가 최소화되는 순간 창작 열망이 반작용을 일으킨다. 나의 생각을 비워냄으로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것들을 보게 된다. 자연을 경제적 이용 가치로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연예찬 시각으로만 자연을 바라보는 것 역시 피상적 접근에 그치게 할 수 있다. 자연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자신의 몸과 의식이 어떻게 남다른 반응을 하는지 느껴야만 나의 고유한 존재성 또한 자연과 더불어 드러낼 수 있다.

2. 동시대미술로의 역확산

1980년대 초반 야투현장에서는 한 대의 카메라로 모든 작품을 촬영하였다. 작가들이 흩어져 작업을 하다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카메라를 가진 작가를 소리쳐 부르거나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미처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고 지나간 작품도 있었다. 사진기록보다는 작업행위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시기였다. 당시 사진 기록이 자료집을 위한 부수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대부분의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컴퓨터상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보정하고 트리밍, 콜라주등의 사진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미술이 사진적인 측면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미술은 카메라로 기록되는 순간 자연의 생생한 작용이 사라지고 하나의 이미지로서 감상의 대상이 된다. 기록된 이미지도 일정 부분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히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 상태라고는 할 수는 없다. 사진은 작가의 미적 판단의 결과로서 존재한다. 사진을 통해 기존의 미술로 귀환한 자연미술은 자연이 지녔던 생동감을 시각 언어를 통해 되찾아야하며 참신한 개념을 통해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켜야만 미술 안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또한 사진이나 영상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제 사진이나 비디오와 같은 기록 중심 매체뿐 만아니라 회화, 설치, 사운드아트 등의 미술 영역으로 들어가서도 자연의 생명력과 관계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야한다.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자연과 미술의 경계 지점에서 미적 교감을 실현했던 야투의 초탈한 태도가 또 다른 형식의 미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순수 자연과의 접촉면을 풍부하게 넓혀온 작가라면 삶의 다양한 생태적 양상 속에 담겨있는 미생의 미적요소들을 확장된 미술 개념 안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연과 미술 그리고 삶이 하나로 연결된 순환의 미술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자연미술이 반드시 사진, 영상, 회화,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 동시대 미술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아마도 그랬듯이 아무도 보지 않는 숲속에서 홀로 작업하고 그 흔적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 작가의 작업 또한 존재하길 바란다.

III

지금까지 자연미술이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탈개성화와 유형화에 따른 작가부재상태의 문제를 지적하고 어떻게 새로운 확산과 순환의 길로 나아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자연미술이 그 자체로서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미술의 한계는 인간의 자기실현을 향한 본성적 의지가 멈추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자연미술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 지속적으로 다음페이지를 써 내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 더 깊이 자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더 넓게 인간의 삶과 예술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갈 것이다.

자연미술이란 무엇인가?

전원길

1. 자연미술自然美術
야투野投』가 출발한 지 3년 차에 들어서는 1983년 초, 공주 금강에서 『야투사계절연구회』을 마친 후 식사를 겸한 토론모임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미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토론했으며 이때부터 자연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미술을 ‘자연미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자연미술’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자연미술이 ‘인간의 미술’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나온 ‘자연의 미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을 당시 『야투』 회원들이 함께 발견하고 ‘자연미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2 자연미술지대 自然美術地帶
자연미술을 하기 위해 자연 안으로 들어가면 평상시 숲 속을 거닐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자연을 보게 된다. 나는 잘 알려진 장소보다는 자연의 생태적 환경이 잘 살아있는 익명의 장소를 선호한다. 평범하지만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작업할 수 있다. 나를 끌어당기는 자연을 느끼는 순간 마치 감상의 대상이던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나무, , 바위. 숲 속의 그림자를 직접 대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자연을 만난다. 이곳이 바로 언제나 존재하지만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자연미술지대’이다.
자연미술은 눈보다는 마음과 정신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에 서구의 개념미술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개념미술이 현대미술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다 잘 이해되고 그 의미가 살아난다면 자연미술은 원소재源素材인 자연과 더 많이 관계한다. 자연미술은 서구 미술의 방법론적 진화 과정에서 벗어나 모든 미술의 근원인 자연에 그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3. 자연미술 하기

1) 기다림
자연미술을 하기 위한 최고의 지침은 자연이 내게 무엇인가를 건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막연한 기다림이며 판단 정지의 상태이다. 나는 지식이나 미술적 신념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몸 감각이 반응하는 장소를 찾아 움직이면서 나의 몸과 의지가 자연의 흐름 안에서 함께 움직이길 바란다. 사전 지식이나 신념들이 해체되고 자연으로부터의 새로운 생각들이 퍼즐처럼 나의 의식 사이를 움직여 저절로 자리를 잡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2) 만남
숲 속을 걷다 보면 무수히 많은 장면들과 자연의 다양한 요소들을 만난다. 이때 나의 눈을 끄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도, 꽃도, 희귀한 식물도 아니다. 그것은 때로 마른나무 가지이고, 길가의 작은 돌들이며,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이다. 나는 자연 속에서 미술이란 이름으로 무장되었던 모든 기술과 개념들을 벗어버리고 마치 첫 만남인 듯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으로 자연과의 독대의 시간을 갖는다.

3) 공조
자연미술은 자연의 생명력과 내 안의 창의적 상상력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자연과 나의 눈 맞춤은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자연의 생명력이 미술 안에서 생생하게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움직임이 어떻게 다른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작용하는지를 잘 살펴야한다. 나는 자연에서 마주한 상황 자체를 작업의 중심으로 이동시켜 자연미술을 한다. 자연 자체에 작업의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자연을 단지 미술을 위한 재료로 다루거나 작품 설치를 위한 장소로만 생각할 수 없다.

4) 절제
자연미술은 그것이 왜 미술이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할 만큼 미술이라는 형식이 최소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의 소소한 장면이나 현상에 반응하는 자연미술은 현장의 풍경을 많이 변화시키지 않는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자연미술을 하는 동안 사적 이야기를 담거나 감정의 찌꺼기를 묻히지 않는다. 자기감정에 빠져있을 때 자연은 우리를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가 최소화된 상태에서만 자연과 미술 사이에 접점이 생긴다. 이 순간 나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율이 공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며, 담백한 자연미술을 보게 된다.

5) 연결
자연미술은 자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다. 모든 자연미술은 자연 전체와 연결되고 하나의 자연 속에서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비록 자연의 한 부분과 관계 하더라도 자연의 다른 요소들과의 연결 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이내 모체가 되는 자연물이나 주변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고 자연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자연미술이다.

6) 사라짐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곳에서 불꽃처럼 발생했다가 사라진다. 자연미술은 아주 간결한 행위를 통해서 자연과 미술이 투명하게 겹쳐지거나 서로 맞물려있는 시적 상태이며 작가가 그 행위를 멈추거나 떠나는 순간 자연미술로서의 ‘자격’을 내려놓고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7) 반추
자연미술은 자연과 경계를 만들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작업과 연결된 순수 자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자연미술 작업의 의미는 달라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이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한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지속적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4. 자연미술의 의미
1)
몸 감각의 회복
자연미술은 사물의 ‘이름’을 지워내는 대신에 눈과 귀를 예민하게 하고 몸으로 자연과 만나는 가운데 발생한다. 나는 산속에서 독초와 약초를 구분하여 병을 치유할 수 있는 풀을 찾아내는 사람들처럼, 혹은 바람의 방향과 새들의 움직임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던 옛사람들의 그 원초적인 몸 감각을 사용하여 자연미술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를 탐색한다.
자연의 움직임에 몸으로 반응하는 자연미술은 마치 움직이는 열차의 특정한 위치에 점을 찍는 것과도 같다. 나에게 자연의 흐름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몸 감각이 없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순간에 발생하는 자연미술을 할 수가 없다.
2)
자연스러운 자유미술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하에서 발생하는 자연과 미술사이의 예술적상태이며 권력화 된 지식, 자본주의 시스템, 성공과 욕망 등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담백무욕淡白無慾한 미술의 가능성을 현대미술계에 제안한다.

3) 자기발견
인간은 자연과 생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인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재의 성격이 다른 두 세계가 교감하기 위해서는 상호 접촉 가능 지점을 찾아야 한다. 이는 나 자신의 의식을 초기화하고 내 안의 자연성을 작동시켜야만 가능하다.
자연미술은 의식적으로는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있으나 자연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는 나 자신이 자연 속에 내재된 나의 근원과 만나기 위한 일종의 ‘소통코드’이다. 자연을 단지 미술을 위한 재료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자연과 예술적 교감을 나눌 수 없다. 자연을 따라 작업하면서 내가 만난 자연 대상에 나를 투영함으로써 나 자신과도 다시 만난다.

4) 삶의 미술
자연미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자연요소들이나 현상現狀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쉽게 전달된다. 또한 자연미술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인간의 생활 습성들을 미술 안으로 이동시킨다. 자르고, 묶고, 접고, 쌓고, 끼우고, 붙이고, 긋고, 옮기는 일상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5. 자연미술의 위치

1) 자연과 미술
자연은 인간 삶의 필연적 조건이기 때문에 모든 예술 활동은 자연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예술가들이 자연의 이치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지만 예술작품의 ‘자연스러움’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이에 반하여 자연미술은 자연의 자연성이 그대로 작업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기존의 미술과는 다른 미적형식을 가진다. 자연미술은 자연현장의 요소들이 생생하게 작용하는 미술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미술은 ‘감상’ 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자연미술을 행하는 ‘체험’을 통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잘 느낄 수 있다.

2) 자연미술의 전환
개념미술이 작업의 과정을 기록한 텍스트나 사진 등을 미술의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야투의 사진 기록물도 당연히 미술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진 자료가 미술은 될 수 있지만 온전한 자연미술은 아니다. 인간의 미술 의지가 최소화된 상태에서 자연 자체가 미술 안에서 작용하는 자연미술은 사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혹은 자신의 미술적 아이디어가 확대되는 순간 개념미술과 같은 동시대미술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는 자연미술이 다른 형식으로 존재하면서도 기존의 미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6. 글을 마치며
자연 속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 치중하게 되면 자연은 사라지고 미술만 남게 된다. 반대로 자연을 그대로 두면 거기에 미술은 없다. 자연미술은 순수 자연과 내가 미술적 관계 맺음을 시도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연과 나의 미술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미술상태’ 추구하는 것이다. 자연미술은 인간의 닫힌 자연성을 일깨워 다시금 자연과 소통하게 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예술 본연의 일을 한다.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미술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자연’이라는 순수 세계를 앞세워 ‘미술’이라는 나의 일을 소홀히 하거나, 자연보다 나를 먼저 드러내려는 마음으로는 자연의 생명력을 담을 수 없다. 자연과 미술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은 내 안의 자연성을 회복함으로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