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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감각의 유희 - 미술평론가 윤진섭

2006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 - 미술평론가 박우찬

2005 영원을 꿈꾸는 정원사 - 미술평론가 박우찬

2004 자연의 내재적 질서 드러내기 - 미술평론가 김성호

2001 생명을 숙성시키는 대지로서의 회화 - 큐레이터 이원일

1997 전원길의 변증법적 회화 - 미술평론가 이재언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Circulating Colors and Object)

박우찬(미술평론가, 경기도 미술관 학예연구사) 

 실내에서 자연으로

 

전원길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대학을 졸업 하던 해인 1983년 시작되었다. 실제로는 대학 4학년 때인 1982년 야투(野投)- 한국자연미술가협회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야투-한국자연미술가협회는 1981년 창립된 미술가 그룹으로서 공주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전원길은 학교 선배의 소개로 야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원길이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아카데믹한 대학의 수업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미술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선배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가 성장해 온 수원미술계의 영향이 컷다. 그는 일찍부터 수원미술계의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미술에 대해 토론해왔다. 그런 이유로 당시 그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자연미술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학창시절 전원길은 학교에서 드로잉을 통한 개념적인 작업을 실험해왔는데, 야투작업은 학교에서 스케치한 작업을 자연공간에서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작업에 대해 “자연공간에서 행하는 나의 작업은 자연의 외적 양태와 내적 질서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미술적 행위로 전개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야투그룹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기 다른 자연 환경에서의 탐구활동인 사계절연구회와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을 통해 자연미술이라는 생소한 미술 장르를 국내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의미있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탓에 아직 한국미술사에서 그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있다. 10년간 야투 활동은 전원길에게 작업의 기쁨과 자기 작업의 이론적 토대를 공공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전원길은 10년간의 야투작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 현장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아주 간단한 행위 또는 설치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돌이켜 보건대, 당시 나의 주된 작업은 몸 전체 혹은 일부를 이용하여 자연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단순하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행위 중심의 작업이었다. 작업을 위해 자연 현장에 있을 때 나는 보다 생생하게 자연의 외양과 내적 질서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디어와 시간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튀어나오는 것을 통해 작업하는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간 존재의 탐색(1991년 -1996년) 

 1991년, 10년간의 자연작업을 접고 전원길은 평면작업에 몰두하였다. 1886년 군에서 제대한 후 야외작업과 평면작업을 병행하여 왔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변신은 아니었다. 이때 전원길이 평면작업에 몰입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아마도 그림 그리기에 대한 향수와 아이디어 중심의 (자연미술) 작업이 가져다주는 허전함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아이디어 중심의 야외작업에 대한 회의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는 세계를 구조적(system)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초기 전원길의 평면작업은 형태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분석적 입체파 스타일의 작업이었다. 사물을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태도는 작가 전원길의 타고난 기질인 듯하다. 분석적인 접근 태도는 영국유학기를 거쳐 더욱 공고화되었고 후에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Circulating Colors and Object)’이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본격적으로 회화작업으로 되돌아온 전원길은 1991년에서 1997년 사이 세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는데, 1회 개인전은 1991년 서울 소나무갤러리에서, 2회 개인전은 1994년 대전 한신코아 아트홀에서, 그리고 3회 개인전은 1997년 서울 서경갤러리에서 열렸다. 1991년의 1회 개인전에서 그는 회화작업으로 복귀하며 줄곧 시도해왔던 입체파식 스타일과 야수파나 표현주의적 스타일로 물체를 단순하게 파악하면서도 내면의 감정을 아주 거칠게 드러내는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사물을 분석적으로 파악하려 하지만 전원길의 내부에는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잠재되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과감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존재에 대한 구조적 이해 뿐 아니라 존재의 심리적, 정신적 이해까지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원길은 이 전시회에 대해 “그리기 작업의 출발은 나 자신의 존재에 관한 불안과 허무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그림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뭔가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표현성이 강한 그림이었다.”하였다.

▲ up(위로)

우는 남자(A weeping man) 캔버스에 혼합재료 130x162cm 1991년

 

2회 개인전은 1994년 대전 한신코아 아트홀에서 열렸는데, 이 전시에서 전원길은 인간의 존재 형식에 대한 논리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논리적 접근이란 더 분석적으로 사물에 접근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분석적으로 물체를 파악하면 할수록 결과는 추상화된다. 결국 2 회 개인전은 1회 개인전보다 작품이 더 추상화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면의 격한 표현성은 유지하였다. 전원길은 1회 개인전에서 추구하였던 작품과 내용을 좀더 심화시켰다. 2회 개인전은 1회 개인전의 연장선상에 있던 전시였다.

2회 개인전에 대해 전원길은 “인간의 물리적 속성과 정신성을 회화적 형식으로 풀어 보려는 의도로, 인간의 물리적 속성을 대변하는 원추형과 원구, 정신성을 상징하는 유기적인 붓질을 화면에 사용하였다. 두 가지의 이질적인 요소가 조화되어 화면에 생기가 생기고, 마침내 나로부터 독립하는 그림을 보는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곤 하였다.”고 말했다. 한편 2회 개인전에서는 단색조의 1회 개인전에 비해 색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는데, 먹물과 흙을 이용하여 검은 색조가 주조 색이 되었던 1회 전시회에 비하여, 다양한 색채를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원뿔형 인간(A cone man) 캔버스에 아클릭 162x130cm 1993년

▲ up(위로)

3회 개인전은 1997년 서울 서경갤러리에서 열렸다. 3회 개인전은 그간의 작업을 통해 나름대로 터득한 이전의 방법론을 정리하여 보다 심화된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2회 개인전 때부터 적용된 입체적 표현에 의한 접근 방식이 3회 전시회에서는 더욱 심화되었다. 3회 개인전에서는 구조적인 분석에 의한 기하학적 형태, 즉 사각형이나 원 등의 분석적인 요소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표현성이 강한 붓질이 병행되었다. 전원길은 “인간의 감정적 에너지의 분출로서의 붓질보다는 오히려 고요하고 단정한 가운데 힘 있게 솟아나오는 서예(書藝)의 필법을 따르려 했다.”고 설명했다. 고요하고 단정한, 그러면서 힘있게 솟아나는 서예의 필법을 따른다고 했지만 그가 그린 형상들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3회 개인전은 논리적으로 대상에 접근하려 하지만, 건드리면 터질듯한 일촉즉발의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표현주의적 형상들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항상 형식과 감정의 조화라는 두 가지 목표의 통합을 추구해 왔다. 아무튼 전원길은 세 번의 전시회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의 추구와 내면의 감정 표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어 매우 만족하였다.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하여 나는 일관되게 인간 존재를 그림이라는 형식으로 풀어 보고자 하였는데, 그것은 인간 존재의 원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통곡의 즐거움이었다.”  

 

 

자라나는 드로잉(Growing Drawing) (1997년-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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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프로젝트(Apple project)

 

1997년, 세 번째 개인전을 마친 전원길은 갑자기 영국유학길에 올랐다. 오랜 준비가 필요한 유학을, 불과 몇 개월의 준비 후에 갑작스럽게 영국으로 떠났다. 자신의 작업을 철학적, 학문적으로 좀더 공고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답답한 현실도 있었다. 대학졸업 이후, 작업과 입시화실을 운영하며 생활해야하는 작가로서의 답답함을 벗어나고픈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도 여느 작가와 마찬가지로 작업과 생계를 병행하고 있었다. 당시 화실은 괜찮게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회의가 더 커졌다. 지긋지긋한 입시미술에서 벗어나 전문작가로서의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작업했다는 자신감에 거의 준비도 없이 영국 유학길에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리만큼 용감했다. 목적지는 영국 런던의 첼시예술대학이었다. 런던예술대 소속 5개 대학의 하나인 첼시예술대학은 권위적이지 않고 학생들의 개성을 살려주며 현장중심적인 교습 스타일로 유명한 학교이다.  

영국 첼시예술대학의 입학상담은 전원길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자신있게 쌓아온 자신의 업적이 오히려 입학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당신 정도의 작가가 굳이 여기서 배울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처음부터 다시 그림을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입학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이전의 작업 스타일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이전의 껍질을 벗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바뀐 환경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충분한 유학 자금을 갖고 시작한 유학생활이 아니었다. 유학 초기 점심은 늘 샌드위치 하나와 사과 하나였다. 어느날 점심을 먹다 한 잎 깨문 사과를 보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술에 접근해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벌레가 되어 사과 속을 유영(遊泳)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동안 그를 줄곧 짖눌러 오던 인간 존재의 본질탐구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탈출구가 열린 것이다. 전원길은 이것을 <사과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사과 프로제트>에 대해 전원길은 “그것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에서 떠나, 회화 자체의 형식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사과 프로젝트>는 사과를 객관적인 관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벌레라는 다른 존재가 되어 사과와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사과벌레이다.“ ”저 달콤한 사과 속을 유영(遊泳)해 보자.” 그는 점차적으로 말라가는 사과 속을 상상의 벌레가 되어 움직이거나, 유영하듯이 흐르는 그 흔적을 추적하여 매일 매일 종이에 연필과 목탄으로 드로잉을 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드로잉(2300여장)을 완성하였다. 벌레가 되어서 접하는 사과는 이전에 알고 있던 사과와는 전혀 다른 대상이었다. 접하는 방식이 달라지니 자연히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 작업은 비록 눈과 손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전통적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창의적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였다.

인간에서 벌레로 된다는 것은 존재 형태만 바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벌레가 된다는 것은 인간에서 벌레로 사고도 제한된다는 것이다. 몸만 벌레가 되고 인간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아무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몸도 제한하기로 하였다.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멈추고 몸도 제한시켜 표현해보았다. 방법은 팔꿈치나 팔목을 책상에 고정시킨 상태에서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마음과 신체를 제한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러니였다. 전원길은 이전의 습득된 기술이나 습관적인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표현방식을 통하여 새로운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의외의 방식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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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벌레의 공간(the space of apple and worm) 종이에 연필 1999년  

 

자라나는 드로잉(Growing Drawing)

 

<사과 프로젝트>, 정확히는 <사과와 벌레의 공간 The space of apple and worm>은 전원길의 작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해 주었다. <사과 프로젝트>를 통해 전원길은 육체적, 정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을 매개체로 예기치 않은 다양한 방식으로 풍부한 이미지를 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신체와 정신을 제한하면서 시도해나가는 자유스러운 드로잉의 과정을 통하여 전원길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통해서도 인간성과 자연성을 느낄 수 있으며 또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전원길은 팔꿈치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작업한 연필 드로잉을 "자라나는 드로잉"(Growing Drawing)이라 이름 붙였다. 이제 작업의 대상은 사과나 벌레 말고도 무엇이든 가능하게 되었다.

<자라나는 드로잉>은 사과 프로젝트의 방법론을 이용하였다. <자라나는 드로잉>은 손목의 기계적인 움직임에 의하여 그려지는 선들을 잇대어 같은 방법으로 드로잉을 확산시켜 나가는 작업으로 생성과 확산이 지속되는 자연성을 드로잉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처음 한 장에서

출발한 드로잉이 계속적으로 연결되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종국에는 모든 벽면을 메울 수 있었다. 상상력만 제한되지 않는다면 작업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었다. <자라나는 드로잉> 작업을 통해 전원길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조형수단을 가지게 되었다.

 

1999년, 첼시예술대학에서 졸업작품전이 있었다. 작업은 균일하게 색면을 칠한 여섯 개의 캔버스를 붙여 만 든 작품이었다. 여섯 개의 캔버스를 붙여 만든 작품은 이전의 그림들과 비교할

때 외면상 급격히 변화한 듯 보인다. 졸업작품은 마치 형상을 가장 단순한 형태와 색으로 환원시킨 미니멀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런 전원길의 졸업작품에 대해 주위에서의 우려가 있었다. 작품이 미니멀리즘의 그것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그의 졸업작품은 실제로는 사과 드로잉에서 시작한, 자신을 제한하는 방식의 표현법을 다른 방식으로 적용한 그림이었다. 졸업작품은 집에서 사용하던 여섯 개의 컵들의 표면색을 캔버스에 그대로 베껴내는 작업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악기를 조율하듯이 단순히 색가(色價)를 조절해 나가면서 플라스틱 컵 표면의 색과 질감을 나타내는 작업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전원길은 인공물의 표면에 대한 새로운 심미적 가치와 색채 조절 과정을 통한 새로운 방식의 표현가능성을 예감하였다. 전원길은 평생 탐구해 나갈 거대한 예술의 신대륙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Circulating colors and object)’ 프로젝트였다.

 

1999년 10월, 영국생활을 정리할 즈음 런던의 마후지갤러리(Mafuji Gallery)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전시회의 주제는 “표면과 공간(Surface & Space)”이었는데, 이 전시회에서 전원길은 혀와 코와 같이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소재로 한 것과 작업실 안의 푸른색을 가진 인공물, 노란색의 실타래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을 소재로 제작한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대부분의 작업은 색채 조절 과정 후 그 물체 혹은 조율된 색 그 자체와의 관련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마후지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은 졸업작품의 연장으로서 졸업 이후 자신의 작업을 계속해나갈 예술의 세계였다.

마후지갤러리의 개인전에 이어 소더비 경매회사와 아트링크사가 주최한 <국제 젊은 작가 100인전(International Young Art 2000 Program by Sotheby and Artlink 텔아비브, 시카고, 비엔나)>의 참여작가로 선정되었다. 외국에서 작가로서의 인정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1999년은 좋은 기회가 계속하여 찾아온 해였지만 그 해 말, 전원길은 귀국하였다. <국제 젊은 작가 100인전>은 귀국 후 국내에서 작품을 보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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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색채와 사물(Circulating Colors and Object)

 

컵의 위치(the location of six cups)

 

2001년 7월, 서울 한전 프라자갤러리에서 개인 초대전을 열었다. 전시회의 주제는 영국에서부터 해왔던 “자라나는 드로잉”이었다. 1999년 런던에서의 귀국 후, 전원길은 영국에서 수행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계속하였다. 늘 그래왔듯이 주변의 인공물이나 자연물을 대상으로 작

업을 하였다. 그는 무심하게 물체의 표면의 색상을 캔버스 위에 옮겨와 조절해 나가고, 그 과정을 기록하기도 하고, 때로는 물체를 화면에 대고 그대로 그리는 행위를 통하여 작업을 해나갔다. 그에게 있어 주변의 사물은 영감의 원천일 뿐아니라 작업에 참여하는 동반자였다.

한전 플라자갤러리의 전시회에서 그는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주변의 일반사물과 자연물 - 예를 들어 컵이나 사과, 스타킹, 인형, 나뭇잎, 오이 등을 주제로 작업하였다. 전원길은 사물의 표면 색채를 화면에 베껴내는 과정을 통하여 이지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감성적인 화면으로 이끌어가고자 하였다. 한전 프라자갤러리의 개인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는 <컵의 위치(The location of six cups)>였다. <컵의 위치>는 집에서 사용하던 여섯 개의 칼라 컵의 색을 캔버스에 옮기고, 다시 색 조절 과정을 나무 블록 위에 기록함으로서, 평면 속으로 옮겨졌던 사

물의 색을 다시 공간 속으로 끌어내어 실제 컵이 놓여질 수 있는 공간적 속성을 만들어 사물의 원래 상태 속으로 색채를 돌려보내는 순환의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작업에서 전원길은 대상물의 색채가 캔버스로 그대로 옮겨올 때까지 무심하게 반복되는 색 조절 작업을 통해 일상의 사물을 절대 상태로 만들고 현실 사물의 무미건조함을 걷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자신의 작업이 실물로서의 생생한 기운을 발산하여 우리의 감각의 밑바닥을 파고들어,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의 원상을 볼 수 있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길 의도했다. 수년 동안 ‘순환하는 색채와 물체’를 탐구해오며 색채와 사물에 대한 전원길의 연구는 미술의 수준을 넘어 철학적 사고를 전개할 수 있을 정도로 깊어졌다.

 

“나에게 있어서 색채는 감정을 담아내거나 종합적인 균형을 위한 요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명암으로 해석되는 물체에 따라붙는 색채로서의 역할도 아니다. 그것은 모더니즘 추상화의 자율적이고 순수한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제공한 일상의 사물로부터 나와서 다시 그 사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사물 속으로 되돌아가는 색인 것이다. 즉 나에게 있어서 색은 물체의 표면을 떠나 회화라는 영역으로 증식되고 그 과정을 통하여 다시 원래의 물체로 되돌아가는 실재의 확장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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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의 위치(the location of six cups) 캔버스에 아클릭, 나무 블록, 플라스틱 컵 1999~2001년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Circulating Colors and Object)

 

1999년 영국에서 귀국한 전원길은 1년 동안 수원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해오다 2001년 11월, 안성 미양면에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1991년 평면작업을 위해 실내로 돌아간지 꼭 10년 만에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물론 다시 자연미술을 시도하기 위해 자연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도시의 비좁은 작업실이 아닌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넓은 작업실이 필요했다. 자연에서 살면서 늘 접하는 자연물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자연물을 대상으로 색채의 순환의 구조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2001년 안성에 자리를 잡은 후 2005년까지 4년동안 전원길은 썸머 프로젝트(Summer Project 2003.1.8-2.22 소나무S갤러리), 이미지 물(物)로서의 회화(Painting as image thing 2004.5.22-6.30 소나무S갤러리), 영원을 꿈꾸는 정원사(Garden that dreams eternal life 2005.9월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 <자연에서 몸으로(To the Nature with body 소나무

S갤러리)> 등 4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중 <자연에서 몸으로(To the Nature with body)>는 1980년대 야투시절의 자연미술을 정리한 전시였고 나머지 세 번의 전시의 주제는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이었다. 자연의 순환구조는 그가 탐구해 나갈 영원한 예술의 세계였다.

오래 전부터 전원길은 서구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사실주의, 추상미술, 개념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회의(懷疑)하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실주의미술은 그 접근과정의 진지함과 그 결과물의 밀도, 그리고 높은 완성도를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 미술은 허구현실(illusion)을 구축한 것이고, 추상미술은 외부세계와의 차단을 통해 회화의 해방적 중립지대를 제공해 주는 듯하지만 결국 자기를 고립시켜 자폐상태가 되기 쉬운 미술이었다. 한편 개념미술은 작업과정에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손(신체)의 참여를 소극적으로 허용하거나 행위자체를 독립시킴으로써 회화적인 이름을 버린 미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회의를 바탕으로 전원길은 평면예술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전원길은 평면회화는 동시대미술에서 벗어난 상징적(전통적) 방식의 예술도,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을 담아낼 수 없는 고갈된 예술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회화는 여전히 시대정신에 반응하는, 우리의 의식이 유영(遊泳)하기 위한 장(場)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원길에게 회화는 단순히 물감을 덧칠해가는 노동의 장(場)이 아니라 그에게 회화는 사고나 철학을 실험해나가는 장(場)이었다.

1999년부터 전원길은 ‘순환하는 색채와 자연’이라는 철학을 회화에서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전원길은 오랫동안 주변의 사물과 자연물이 지닌 색채를 화면에 베껴내는 과정을 통해 사물과의 시각적, 정신적 교감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대응적 관계로 인식되는 평면과 공간이 색채를 매개로 하여 상호순환하는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와 아울러 작업의 과정과 그 결과를 개념적, 시각적 심미성의 균형상태에서 서로의 가치를 확보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전원길이 관념적으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10년 동안의 자연작업과 존재에 대한 본질의 탐색, 그리고 영국 유학과 안성의 자연작업실에서 오랜 동안 자연과 교감하며 얻어낸 결론이었다. 전원길은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이라는 신대륙에서 매일 매일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즐겁게 작업해오고 있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대상 색과 비교해 다시 조절된 색을 칠한다.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섰다가는 다시 멀어지는 색을 쫒는 작업은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집중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손에 잡힌 색은 마르는 동안 다시 나를 빠져나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색이 나의 작업과정 속에서 잠시나마 하나로 만나지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이 세상 속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져가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어떠함을 나의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끝없이 즐거운 일을 계속한다.”  

전원길의 작업은 사물에 의해 드러나는 색(色)에 접근하기 위한 색채의 계량(計量)적 조절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정확한 색가(色價)를 얻기 위한 조색(調色)과 칠하기 과정 자체가 작품을 이루어가는 중심형식이 된다. 그의 색채의 조율과정의 기록은 대상이 취하고 있는 실제 색에 관한 것이다. 

“물체에서 색을 제거한다면, 다시 말해 빛을 제거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기에는 촉각적인 실재만이 남게 된다. 물체와 색은 완벽하게 같은 몸을 이루면서도 별개이고 물체로부터 독립된 색은

평면과 공간 속에서 동질의 상태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물체색의 캔버스로의 이동이라는 목표를 향해 마침내 분명한 순간을 맞는다. 이때 물체의 표면색은 아무런 미적 해석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화면에 옮겨지고 그것을 조율과정에서 쌓아올려진 붓질의 궤적으로 말미암아 단색임에도 화면에 시각적 깊이와 격조를 만든다.” 

그가 오랫동안의 관찰과 분석을 통해 도달한 ‘순환하는 구조’는 이해하기가 어려워 다소 관념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나 그의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이라는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우리는 그가 만든 색의 정원에서 순환하고 운동하는 색채들의 리듬을 보며 시각적 즐거움과 그가 만든 자연의 정원에서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다.

소나무갤러리 관장, 전시기획자, 문화운동가  

영국에서의 생활은 작품세계 뿐아니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삶이라는 것이 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작가라면 당연한 생각이지만 우선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는 널따란 작업실을 갖고 싶었다. 도심지의 좁고 작은 작업실이 아닌 물리적으로 제약당하지 않는 큰 자유로운 작업실. 여기 저기를 찾아다닌 끝에 안성 미양면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 나이에 초야(草野)에 묻혀 도사같이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삶이 필요했다. 작가는 홀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교류하는 존재이다. 작업실 일부를 소나무갤러리로 만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작가에게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는 공간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원길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를 중심으로 그동안 많은 문화활동을 해오고 있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보체리 사람들의 시간여행> 등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통해 지역의 예술가들과 지역사람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계몽가로서의 미술의 전파가 아니다. 그는 작업실 속에서 움츠린 미술이 아닌 사회 속에서 살아 숨쉬는 미술, 사람들과 소통하는 미술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 한다.

 

자연의 내재적 질서 드러내기
김성호(미술평론가)

  이번 호 뉴스레터 작업실 탐방 코너는 작가 전원길이다. 햇살이 따스한 가을 끝, 지난한 여정을 감당하느라 허리를 앓아대는 차를 채찍질하며 오르막 외길을 올라 가까스로 전원길의 작업실에 도달한다. 휴우! 경기도 안성 인근의 한적한 시골길, 그 한 끝자락에 그의 소나무 스튜디오 갤러리가 시야를 탁 틔운다. 이 전원의 아틀리에는, 90년 서울 동숭동에 개관해서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현대미술의 발표의 장으로 기능했던 소나무갤러리의 취지를 계승하고자 당시 창립멤버와 큐레이터로 근무했던 그가 영국 유학이후 2002년 4월 안성에 터를 잡고 소나무S갤러리로 재개관한 것이다.
 이 곳은 아틀리에와 갤러리의 특성을 아울러 표방하는 대안공간인 셈인데, 일반인들과의 만남과 그들의 문화체험 교육을 시도하는 ‘소나무 미술학교’ 운영이나 미술인들로 구성된 회원 간 커뮤니티와 비평문화의 활성화를 선도하려는 ‘독립작가 연구회’ 운영 등을 함께 하고 있다. 갤러리와 아틀리에를 겸하고 있는 특성상 소나무S 갤러리는 일반인들에게는 토요일에 정기 개방하고 평일에는 예약을 하고 관람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는데, 전원길에게 있어서는 나 또한 평일에 찾아든 ‘벼락치기 예약손님’이 된 셈이다.

  '나의 그림은 싹을 틔어서 자라게 하고 다시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지를 닮고자 한다. 자란다는 것이 사라지는 과정이듯이 표면 속으로 돌아간다. 나는 마음 없이 움직이는 자연처럼 일하고 싶다.'
전원길이 그의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최근 작업은 호박을 키우고 포도 넝쿨을 올릴 수 있는 자연 환경과 늘 호흡하면서 지내는 연유로 인해 자연의 이미지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참외, 오이, 토마토, 솔방울, 포도넝쿨과 포도, 호박잎과 호박 등등... 그러나 전원길의 작업이 자연물의 소재주의에 탐닉하고 있지 않고 자연의 원형적 혹은 내재적 질서 드러내기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들이 지향하는 태도는 일찌감치 자연주의, 전원주의를 벗어나 있다. 유학 이전의 작업 역시 자연에 내재된 근원의 질서, 그 안에 거하는 인간의 존재론을 그 화두로 삼고 작업해 왔던 만큼 컨텍스트(자연)와 텍스트(인간)의 문제는 여전히 최근 작업에서도 일관되게 지속되어 오고 있다. 단지 이전 작업에서 표면 위로 떠올라 있던 창작 주체인 화가의 존재의식이 최근 작업에 이르러 자연이미지 나아가 그 이미지의 내재율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존재론의 심각한 고민이 무화된 듯이 보일 뿐이다.
그의 석사 논문 ‘현대회화의 기하학적 형태와 표현성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듯이, 전원길은 이전 작업에서 지적 측면과 감성적 측면이 병존하는 화면 경영을 시도해서 육체와 영혼을 함께 소유하고 있는 인간 존재 표현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기하학적 형태와 표현적인 제스처, 이 두 대립항이 충돌하는 화면은 흡사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것이 최근에는 작가의 독자적인 창작 논리에 의해서 매우 이지적인 면모로 탈바꿈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자연은 결코 이지적이지 않는 실체임을 확인하는 길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사색하고 그 위에 의미를 덧붙이는 우리들, 인간에 의해서 질서의 체계를 부여받았을 따름이다. 특히 미술의 세계에서는 원근법이나 투시법 등 자연을 끊임없이 가두어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화가들이나 자연을 근원적 질서의 세계로 되돌리려고 분석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설정했던 입체파 같은 이들의 시도에 의해서 질서 짓기의 결박을 당한 셈이다.
  전원길 역시 자연을 대상으로 사색한다. 그가 여전히 이지적인 태도로 자연에의 질서에 집착하면서도 앞서의 우리들 선배들과 차별화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면 자연의 질서를 분석, 구축해내려고 하기 보다는 자연에 동화되거나 차라리 그 부분집합이 되기를 원하는 태도일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연을 캔버스 삼아 ‘야투’ 활동을 통한 자연미술을 시도하는 전원길에게 있어서는, 자연의 흔적을 더듬어 그 원형의 질서를 따라가는 행위만이 의미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그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접근할 때,  그 창작에 있어 주인공이 되기를 포기하려는 태도, 단지 그 창작의 결과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의 질문은 그의 작업이, 그의 창작 결과물이 자연 앞에서 늘 미끄러지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는데 존재한다. 그의 작업이 결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생생한 시각적 결과물로 작가 곁에 남기 때문이다. 화이트 큐브에서의 전시가 설정되고 있는 회화 작품에 관한 한, 이러한 이미지의 양상은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연물의 이미지를 관통하는 유사색을 찾아내고 그 유사색에 자연의 이미지를 설정한 작가는 다시 그것에 도달하려고 하는 부단한 색 조율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행위 자체가 겹겹이 쌓여있는 시각적 결과물의 이미지가 자연의 근원적 질서로 회귀되기에는 너무나 생생해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 결과물은 자연 앞에서 미끄러지거나 그 앞에서 모양새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필자로서는 이 창작 결과물의 미끄러짐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작업의 본질적 의미가 찾아지지 않나 싶다. 결과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과정 자체에 보다 큰 의미를 두는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관건이 되는 것이다. 전원길은 자연의 흔적을 더듬고 그 원형의 질서, 내재적 질서를 따라가는 행위의 과정 자체를 색과 이미지가 침투하는 그의 회화 안에서 전개해 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레드, 블루, 옐로우, 화이트 4원색만을 가지고 그가 설정하는 자연물의 다양한 색을 혼합, 구축하고 이처럼 설정된 하나의 혼합색에 다시 도달하려고 하는 4원색으로부터 출발하는 형상 만들기라고 하는 매우 독특하고 이지적인 창작 방법론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summer leaves 1’의 작품을 보면 그가 취한 실제의 나뭇잎 색에 근접하기 위해 화면위에 색조율 과정을 통해 계속된 붓질로 균일하게 단일색을 만들어내고 이 색에 다시 근접하기 위해 빨강, 파랑, 노랑색으로부터 출발한 각자의 나뭇잎들이 초록의 나뭇잎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원형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태도를 회화의 어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는 ‘grapes’라는 작업에서 작가는 먼저 분홍빛으로 보이는 포도의 새순에 근접하는 색을 화면위에 균일하게 올린다. 그 다음 실제의 포도잎을 화면위에 부착시켜 그 위에 실제 포도잎에 근접하는 색으로 일일이 붓질을 통해서 코팅시켜내고 다시 포도줄기를 통해서 다른 포도잎의 이미지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배경의 색과 같아지려는 흔적들을 가시화 시켜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물의 색과 같아지려는 화면 만들기가 극대화 되어 있는 ‘컵의 위치’라는 작업은 그것이 컵이라는 사물의 색 만들기로 전치되고 있지만 자연의 원형, 그 흔적을 따라가려는 데 집중되어 있는  작가의 대상에 대한 이해의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실제의 참외를 화면위에 올려놓고 같은 색의 물감으로 계속 칠하여 캐스팅한 후 참외를 빼어내고 그 참외의 공간을 주저앉혀 보여주는 작업은 그의 표현대로 ‘이미지物로서의 회화’의 자격을 부여받으며 자연이미지의 물성을 강조해 보여주고 있다. 분석 대상의 자연을 끌어안고 차라리 그 자연의 질서를 흉내 내며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내재적 질서를 따라가고자 하는 전원길의 ‘자라나는 그림’은 전통적이면서도 매우 이지적인 회화 어법을 통해 시간의 흐름, 창작자의 노동행위를 기록하면서 오늘도 여전히 ‘마음없이 움직이는 자연처럼 일하고’ 밭 매는 농부의 마음을 담아내고자 한다.(2004. 11.15)

 

감 각 의 유 희

윤 진 섭 | 미술평론가

   

전원길의 예술관은 서구 모더니즘의 핵심인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른바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따른 진보(progress)에 대한 질문, 자연의 도구화, 기술문명의 폐해에 대한 고발 등이 자연에 대한 생태적 접근을 통해 매우 완곡하면서도 은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전체적인 작업의 특징은 서구 근대성의 핵심으로 치부돼 온 시각 중심적인 것에 있지 않고 촉각 중심적인 데 있다.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회화와 입체, 설치작업에서 전원길은 손을 비롯한 신체를 자연에 의탁하는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 회화에서는 두꺼운 물감의 질감을 통해, 자연을 캔버스로 한 입체와 설치, 퍼포먼스에서는 몸의 뛰어듦(企投)’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전원길의 입장이 시각중심적인 서구의 근대성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자연의 장악이 아니라, 자연에의 동화, 즉 자연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태도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전원길이 자연을 관찰하면서 얻은 통찰과 그 성과는 길이가 무려 7m에 달하는 대작 <나뭇잎>(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 칼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로 30cm 세로 30cm의 정방형 패널 168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전체가 녹색조로 이루어져 있다. 패널의 바탕색은 각기 서로 다른 색의 기미를 띠고 있는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것들은 자연의 색이다. 그는 그렇게 조성된 바탕색 위에 실제의 나뭇잎을 전사하거나 오브제로 붙인 나뭇잎에 채색을 가해 화면위에 고착시킨다. 이 작업에서 질감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며 그것은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닮고 있다. , 자연에 조작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전원길의 작품에서 그 다음에 주목되는 것은 장소성이다. 여기에 이르면 인위성에 대한 배제는 극심해진다. 특정한 장소에서 받게 되는 각별한 느낌, 거기에 어떤 나무들, 혹은 숲이 있고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있다. 그는 그러한 분위기에 주목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빛과 자연속의 물체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분위기의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주변에서 발견한 자연물을 통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찍은 나뭇잎 연작은 이러한 종류의 것이다. 이 사진 속의 사물들은 너무나도 비인위적이어서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장면들이다. “이것들이 과연 작품이 될까?”하는 질문이 떠오르는 사진들, 그러나 그런 사진들이야말로 과거 30여 년간 야투의 회원들이 몰두해 온 예술이 아니던가. 자연에 대한 조작이나 인위성을 거부하는 행위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현대미술의 한 지류를 이루어 온 것이다.

전원길의 <영원한 풍경>을 비롯하여 <하늘나무>, <꽃비>, <> 연작은 연한 파스텔 톤의 바탕에 가는 선을 사용한 드로잉이 중심이 돼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원한 풍경> 연작은 상상 속의 천상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푸른 색 바탕에 구름을 연상시키는 희뿌연 물체와 그 주변에 늘어져 있는 흰 실선들, 그것들은 허공을 소요하는 신선 같기도 하고 밀림에 늘어선 나무줄기나 식물의 덩굴 같기도 하다. 그 장면은 마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나무처럼 리좀적 구조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섬세한 선으로 드로잉을 하는 전원길의 예민한 감성은 아마도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의 사물들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 같다. 거기에는 길이 있고 그 길은 감각적인 붓질로 이루어진 색의 계조(gradation)로 이루어져 있다. 전원길이 그려내는 이 환상적인 풍경은 현실의 자연을 떠나 이상향의 세계를 그리는 작가의 내면적 풍경이리라. 실로 감각의 유희라고 부를 수 있는 전원길의 회화는 마치 자수를 연상시키는 도드라진 물감의 흔적처럼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 행위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생명을 숙성시키는 대지로서의 회화

성곡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이원일

I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사물을 본다는 것은 사물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삼라만상의 현상계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오묘한 깊이와 폭을 발견하기 위해 사물의 표피를 둘러싼 고정적 이데올로기를 벗겨냄을 의미한다. 전원길의 작업은 그러한 고정관념과 왜곡으로부터 사물을 해방시켜 본래의 가치와 본질을 되돌려 주는 인간행위로 규정 할 수 있다. , 선택 된 대상의 이미지를 자신이 고안해 낸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서 숙성시켜 재맥락화된 또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해부와 재구축을 통해 실제를 규정하는 현대사회의 특질을 미술(그림 그리기)의 문맥에서 재조명하는 예기치 않은 기쁨을 담보한다. 그러한 행위는 실제의 이미지가 억압되거나 유린당하고 있는 영상정보시대의 이미지 소통속에서 왜곡되고 거세된 문맥을 복원시키고 마비된 감성을 회복시키는 차원에서 이미지의 진정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간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맥락에서 보면 미술의 생산 방식 자체를 의심하고 무위로 돌려보내는 신선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그림은 사물의 표피와 캔버스의 베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벗겨버리는 '진실 게임'과도 같다는 것이다.  

II

전원길의 작업은 우선 자신이 캔버스 위에서 싹을 틔워 성장시킬 구체적 대상을 선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선택된 사물의 외형적 특징과 주조색을 포착한 후 그 본래의 가치에 최대한 근접한 색채를 화면의 밑바탕에 칠한다. 그 다음은 형태를 구축하는 작업으로서 바탕색을 위해 섞었던 질료(물감)를 다시 분리하여 이미지의 외형의 출발로 설정한 후 층층이 바탕색을 향해 다가가게 한다. 그것을 다시 주조색으로 덮고 드로잉을 하거나 질료의 층위를 쌓아서 최종적 이미지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를 종합해 보면 일차적으로 질료를 덮고(물리적 구축), 그 위에 시각적 재현을 중첩시킨 후 다시 물질을 덮어씌움으로써 2차원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최종적으로는 질료의 오브제적 쌓임이라는 3차원적 구조 혹은 공간의 형태로 제시되는 것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그것이 입체감이 주어진 경우지만 여전히 2차원 평면에 귀속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필자가 '게임'이라고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복합적 문맥의 투영에 있다. 즉 그의 작업이 질료적 기반에 의해 완고한 평면성에 입각하면서도 가상과 실제 사이의 일류젼을 착종시키며 대상과 화면, 손과 눈의 관계, 사물, 캔버스, 시각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선들을 교차시키는 치밀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리듬이 있는 시각적 일류전위에 촉각적 요소를 개입시켜 지적 게임의 극한에 도달했던 라인하르트나 금욕적 가치를 추구했던 미니멀리스트의 유령들을 유혹하다가도, 돌연 마크 로드코의 예배실을 거쳐 구체적 형태로 화면에 매달리게 되는 절묘한 접점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전략에 의해 전원길의 회화는 이미지를 배양시키는 매우 명확한 사고에서 출발하지만 특정한 형상이나 나레티브의 구조에 닻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유연하고 모호하기까지 한 추상과 구상의 잠정적 가능태로 중첩되고 출몰한다. 그렇게 될 때 그의 화면 속의 이미지들은 「경계를 조작하고 접근하며 비비고 문지르며 압박한다」고 지적한 쟈끄 데리다의 공간개념처럼 전경과 후경의 정치성에서 어느 한 쪽에도 기울어 있지 않은, 즉 바깥도 안도 아닌 완전한 밀착으로 캔버스에 흡수되는 것이다.    

III

이렇게 사물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모든 정태적 노력과 결별하고 있는 전원길의 작업은 시각의 이동으로 시점을 이동시키고, 그것에 의해 세상이 아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가령 자신의 눈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혀와 코를 그린 「신체-혀와 코」라는 작품에서 모면 일상에서 망각되고 있는 신체기관의 일부를 끄집어내어 자신을 옆에서 바라보는 사시(斜視)와 같은 시각으로 '시각의 정면성'에 도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아내가 신던 짝 맞지 않은 스타킹들을 특유의 방법론으로 그려낸 '스타킹'이라는 작품에서는 한 번 쓰면 사정없이 버려져서 갑자기 낡은 것이 되고 마는 일회용 기능주의의 허무함을 문제삼아 그 삭막한 시선을 수정하려는 연민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마주하는 일상과 아내라는 인연을 그려낼 때 일회용으로 용도폐기 되어가는 '사랑'을 미술의 이름으로 싹을 틔워 가슴에 아로새기는 애정으로 성장시키고 복원시키려는 애절함을 읽게되는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캔버스 위에 물을 준 '개나리', '진달래', '고구마', '토마토'등의 연작들도 역시 그러한 대지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믿음의 묵묵한 수행으로서 자연 속으로 되돌아간다. 죠르쥬 브라크의 깡통처럼 시점과 시각의 이동에 의해 삭막한 문명의 폐기물이 아름다운 조형물로 숙성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의 실천에 의해서 말이다.  

IV

한편 이전의 작업들과 궤를 달리하는 입체작업인 「컵」시리즈는 오브제의 설치와 평면작업의 방법론을 혼재시킨 새로운 시도로서 환영과 실체의 상반된 속성을 서로 보충하는 전혀 다른 양상을 제시한다. 그것은 재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재현의 부재를 동시에 지적하는 양면적인 현상으로서 오브제의 표면과 색채에 의해 에로틱한 느낌마져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전원길의 회화는 단순한 색채와 구조의 축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질료가 직접 스스로를 그려나가는 과정을 통해 정신과 물질이 조우하는 것 이상의 문맥을 생산 해 낸다. 거기서 작가는 일상의 하찮은 사물들이 성장을 멈추지 않는 영원한 숙주가 되기 위한 매개자, 하나의 영매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의 그림은 대지를 닮아가고자 한다. 대지로 상징되는 '모성'의 은닉된 에너지를 한 켜 한 켜 쌓아 올려 사물과 미술 위에 군림 해온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잠재운다. 그렇게 함으로서 생명을 숙성시키는 모태로서의 캔버스라는 대지는 잊혀져 가는 생명들을 또 다시 잉태하기 위한 숙명을 준비하며, 이미지의 긴 왜곡의 고리를 끊고 세계의 스스로의 위치를 해방시켜 나가는 것이다.

 

전원길의 변증법적 회화

이재언/미술평론가

세 번째가 되는 전원길의 이번 개인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곧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도영을 앞두고 갖는 개인전은 무언가 하나의 매듭을 짓고자 하는 일일 것이다. 그 스스로가 예술은 환경의 소산임을 인정하는 터여서, 새로운 환경에처했을 때 향후 자신의 그림들이 어떻게 변모 해 갈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다. 93년 두 번째 개인전 이후의 작품들이 아무리 양식적으로나 방법적으로 동일선상의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매듭으로 남기고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행위와 설치 등의 작업으로 비교적 실험적인 그룹활동에 참여하였다가 90년대 초부터 다시 그림으로 복귀한 전력을 갖고 있다. 물론 매체나 방법이 다르긴 하나 추구하던 내면세계가 크게 달라진 바는 없다. 전에 그가 보였던 설치나 행위작업을 직접 본 일은 없지만, 남아 있는 도큐먼트들을 통해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과 고뇌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랬던 그가 그림으로 다시 복귀한 것은 단순한 복귀이면서도 또 다른 '종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그리기에 대한 감각, 붓 맛에 대한 향수라고나 할까.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일원론적 입장에서 벗어나 좀더 유연하고도 다원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데서 온 결과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즉 관심과 투구의 핵심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으로 그 근간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단지 대립적인 요소들이 내면적으로 화해되고 융합되는 종합의 모색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가 몇 년간 지속해 온 그림들은 그리 평범하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부류는 아니다. 불확실하고 무질서한 화면의 전개, 다소 음산한 듯한 분위기, 무언가 잔뜩 불안하게 부유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언가 형상의 기조가 있는 듯하면서도 그것들이 심하게 해체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양상이다. 또한 종합이라는 측면 외에도 화면은 미완의 진행형 시제를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그림들은 바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명사로서의 인간이다. 그가 파악하고 있는 인간이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실체임과 아울러 복잡하고 고도한 정신세계를 가진 복합적인 속성을 지닌 존재이다."(작가노트)

그리하여 그러한 존재의 문제를 형상으로 접근하기 위해 그는 원형과 원추형으로 접근한 바가 있다. 물리적 속성을 기하적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세잔느의 주지적인 입장에 서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이런 메커닉한 기하적 조건들에 역동적인 필치들이 어울려 있다.

근작들의 경우는 직접 인체 형상들이 등장하지만, 그 형상이 제대로 인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근작을 하기 위해 잡지나 신문 스크랩에 실린 인물들의 표정들을 아주 생생하게 그린 것을 이런 저런 필치로 해체하거나 왜곡시킨 것들을 축척해 놓고 있다. 실제 캔버스에서의 느낌과는 다소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인체를 그리기 보다는 인간의 존재를 변증적으로 접근해 가는 하나의 단계로 이해시키는 좋은 단서가 되고 있다.

그러한 인체 형상을 왜곡 내지는 변형시키는 강렬한 필치는 동양의 서법 예술이나 문인화등이 보여주는 화격을 추구하고 있다. 힘과 의지의 물 흐르는 듯한 조절이 무작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짐으로서 그 자체의 격과 자율성을 실현해 나가는 이 행위적 요소는 어쩌면 일찍부터 추구했던 행위나 설치의 연장선상일 수도 있으면서 보다 근원적인 것의 탐구 과정 속에서 조우한 대목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가시적 형상의 부정과 해체를 통해 내면에 도달하고자 하는 몸짓인 것이다.

근작에서는 원추형과 같은(따라서 원근의 공간성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구조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몇 개의 사각형들이 등장한다. 이는 일단의 일류전 면에서 원근성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음은 물론 대립적인 것들의 강제적 결합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견고한 것과 유연한 것.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물리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이지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 기능적인 것과 자율적인 것들의 조합들이 그로 인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결합이 미완 혹은 혼돈의 장으로만 고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화면의 질서가 약간의 위험 부담을 안고 있어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편안한 것을 버리고 약간은 부담스런 부분을 자초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시도가 시각적 편안함을 차단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물 흐르는 듯한 자연성에 순응하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 확실히 그의 그림에서는 환원이라는 계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의 미완의 비어 있음과 혼돈의 화면 질서가 현실 세계와는 다른 세계, 또 다른 유형의 질서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심하게 왜곡된 인간 형상을 놓고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어색해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보는 세계상의 확실성을 우리는 서서히 회의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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